[청년의 눈] 시작된 경제 전쟁, 물러설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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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 눈] 시작된 경제 전쟁, 물러설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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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8.31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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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환 기자
▲김도환 기자

[미디어라인=김도환 기자] 지난 7월 1일, 일본이 한국을 상대로 한 수출 규제 조처를 발표했다. 규제 품목은 포토레지스트, 애칭가스,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로서 모두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에 사용되는 핵심 소재들이다. 반도체 강국인 우리나라에겐 당연히 좋지 않은 상황이다. 우리나라는 이에 대한 대처로 정부는 국제법을 검토하여 원칙적으로 대응할 준비를 하고 있고 국민들 개개인은 일본 여행 자제와 일본 상품들에 대한 불매 운동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한국의 대응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글들이 일부 언론사의 사설들을 통해 꾸준하게 나오고 있다. 유독 그런 글들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뉘앙스가 있는데 마치 일본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감정적이고 비이성적이라는 것이다. 과연 그런 것일까.

7월 3일, 일본의 정당대표 회의에서 아베 총리가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 이유로 꼽은 2가지는 ‘강제 징용 배상판결’과 ‘위안부 합의 파기’이다. 둘 다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과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에 기초한 국가적 약속인데 한국이 이를 지키지 않았으므로 더 이상 국가 대 국가로서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 주요 논지였다.

우선 전자를 살펴보자면, ‘강제 징용 배상판결’의 주요 쟁점은 개인 청구권의 소멸 여부이다. 신일본제철 주식회사를 상대로 한 동일한 내용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은 일본 사법부에선 ‘강제징용’과 ‘개인 청구권’을 둘 다 인정하지 않아 2003년 최종 기각 되었고, 우리나라 사법부는 둘 다 인정하여 2018년 신일본제철 주식회사로부터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각각 1억 원씩 배상하라는 최종 판결을 내렸다. 현재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 역시 자국의 사법부 해석과 똑같이 서로 정반대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 정반대의 결과는 한일청구권 협정 제 2조 제 1항에 대한 해석 차이 때문이다. 현재 일본의 배상 책임이 없다는 주장 역시 “...양국의 모든 청구권에 관한 문제는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다는 것을 확인한다.”는 문구에 근거한다.

이에 대해선 몇 가지 반론의 여지가 있는데 우선 첫째, 한일 청구권 협정 당시에도 우리나라와 일본은 강제 점거와 불법 행위에 대해선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따라서 2018년 대법원 판결 역시 1952년 한일 회담부터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까지 일본이 강제점거와 식민 지배에 대한 불법성을 언급하지 않은 점을 꼽았다. 그렇기에 강제 징용 피해자들이 청구한 것은 일제 강점기 시절의 불법성과 침략 전쟁에 직결된 일본 군수업체의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대한 ‘위자료 청구권’이므로, 이는 한일청구권 협정에는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1965년 협정 당시에도 일본이 우리나라에 지불한 무상 3억 달러는 본인들의 잘못을 인정한 ‘배상금’이 아니라 ‘경제 협력금’, ‘독립 축하금’으로서 주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또한 당시 한국 정부가 배상 책임까지 상정하여 요구한 금액은 12억 2천만 달러였다. 그러나 일본이 지불한 이에 한참 모자라는 액수에 강제징용 위자료가 포함됐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 대법원의 추가 설명이다. 즉, 한일 청구권 협정은 일본이 일제강점기 동안 벌인 각종 불법 행위에 대해선 그 어떠한 합의 사항도 없었기 때문에, 불법 행위에 대해 청구한 강제 징용 피해자들의 소송은 협정과는 별개라는 의미다.

둘째, 일본이 미국, 소련과 맺은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1951), 소일 공동 선언(1956)에도 한일 청구권 협정과 유사한 청구권 포기 조항이 있는데, 이에 대해 일본 법원이 개인 청구권은 살아있음을 인정한 판례가 있다. 당시 원폭 피해자와 시베리아 억류 피해자들이 위 조약에 근거하여 상대국인 미국과 소련에 대한 청구권은 소멸되었다 여기고 자국인 일본에 보상청구 소송을 제기한 적이 있다. 그때 일본은 “조약으로 포기된 것은 일본정부의 외교보호권이며 개인(일본인 피폭자 ,억류 피해자)의 손해배상 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기 때문에 일본국은 보상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즉, 청구권 포기 조항은 외교보호권(국가 청구권)만 소멸되었을 뿐 개인 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으니 피해자들이 상대국인 미국과 소련에 개인적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인정한 것이다. 이에 비추어 봤을 때 일본이 개인 청구권의 법 해석에 있어서 자국의 피해자들과 한국의 강제 징용 피해자들을 다르게 판단하는 것은 모순적이다.

셋째, 일본 스스로 한국의 개인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다는 것을 몇 차례 인정했다. 1991년 당시 외무성 조약국장 야나이 순지는 참의원 예산위에서 “개인의 청구권 자체를 국내법적인 의미로 소멸시킨 것은 아니다.”, “이것(한일 청구권 협정)은 한일 양국이 국가로서 지닌 외교적인 보호권을 서로 포기한다는 의미”라고 발언했다. 국가 대 국가로서 청구할 권한만 없어졌을 뿐 개인이 청구하는 것은 소멸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또한 일본 외무성이 2008년에 공개한 대외비 문서에는 “제 2조의 의미는 국제법상 국가에 인정된 고유한 권리인 외교보호권을 행사하지 않는다는 약속인 것이고, 국민의 재산으로 국가의 채무를 충당한 것은 아니다.”라고 적혀 있다. 이는 청구권 포기 조항은 양국에 똑같이 적용되기 때문에 후에 일본의 피해자들이 한국을 대상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경우 개인으로서 청구하는 것은 가능하다는 해석을 위한 문구로 보인다. 마찬가지로 2018년 중의원 외교위원회에 출석한 고노 다로 외무상이 한일청구권 협정에 대한 고쿠타 게이지 중의원의 질문에 “개인의 청구권을 소멸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고 발언했다.

혹자는 우리나라도 노무현 정부 시절 민관공동위원회를 통해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개인청구권이 소멸되었음을 인정하지 않았느냐 라고 말한다. 바로 “일본에서 받은 돈은 강제동원 피해자의 보상 성격이 감안 돼 있다.”라는 당시 발언 때문인데 ‘보상’과 ‘배상’은 법적으로 엄연히 다르다. 당시 민관공동위원회가 발표한 자료에도 ‘보상’과 ‘배상’의 단어를 명확히 구분해 “위안부 문제 같은 반인도적 불법 행위는 청구권 협정으로 해결되지 않았다.”라고 명시돼 있다. 또한 이후 발간한 민관공동위원회의 백서를 보면 곳곳에 개인의 ‘배상’ 청구는 가능하다는 취지의 문구들이 존재한다. 따라서 한국 정부가 민관공동위원회에서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인해 개인 청구권까지 소멸됐음을 인정했다는 의견은 잘못된 주장이다.

다음은 한일 위안부 합의에 관해서다. 현재 아베 총리와 일본은 마치 일방적으로 한국이 합의를 지키고 있지 않다는 듯이 일본 내에서 정치적 선전을 하고 있다. 하지만 한일 위안부 합의의 취지와 정신을 훼손한 것은 일본에 책임이 있다. 2015년 12월 합의를 통해 일본은 “군의 관여 하에 다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로서 일본의 책임을 통감하고 '위안부' 피해자의 고통과 상처에 대해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한다.”고 입장을 내놓았다. 하지만 바로 다음 달인 2016년 1월 아베 총리가 위안부에 대해 강제연행이 없었다고 발언하며 당시 일본군의 불법성에 대해 인정하지 않았다. 또 한일 위안부 합의에 실무를 맡았던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은 “일부 해외 언론이 위안부를 ‘성노예’로 기술하고 있지만, 이는 부적절하고 사실에 입각하지 않은 표현”이라고 주장하며 마찬가지로 일본군이 위안부에 행했던 강제적인 성 착취 행위를 부인하는 발언을 했다. 즉, 일본은 일본군이 과거에 행했던 위안부에 대한 어떠한 불법적 행위에 대해서도 인정하지 않으면서 한국과 위안부 ‘합의’를 하고 ‘사과’를 한 것이다.

해방 후 지금까지 한국과 일본의 과거사 악순환은 바로 이런 방식으로 쭉 이어져 왔다. 누군가는 도대체 일본에게 언제까지 사과를 듣고 돈을 받아야 그만할 것인가 라고 묻는다. 하지만 이런 관점은 전형적으로 일본의 입장에서 생각한 편협한 시각이다. 일본은 지금까지 화해의 제스쳐 후에 그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행위들을 계속 해왔다. 제국주의 시절 행한 만행들을 교과서에서 삭제하고 침략국, 전범국임에도 마치 일본이 피해자인 듯이 묘사하는 컨텐츠들을 양산해 왔으며 국제적으로 본인들의 불법 행위에 대해 계속해서 부인하는 발언을 일삼았다. 일본이 이런 식으로 과거를 세탁할 때마다 우리나라가 가만히 있는 것이 과연 일부 언론들이 말하는 덜 ‘감정적’이고 덜 ‘비이성적’인 것일까.

8월 2일, 일본이 한국을 사실상 안보 우방국임을 공인하는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함으로써 이 외교적 갈등이 장기적 대치 국면으로 들어갔다. 외교 정치적 문제를 경제의 영역으로 끌고 들어온 것은 일본이며 그 쟁점의 핵이 과거사와 연관된 이상 우리나라는 물러설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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