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 눈] 동생의 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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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 눈] 동생의 유학
  • 이재상
  • 승인 2019.09.30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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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상 기자
▲이재상 기자

[미디어라인=이재상 기자] 지난 7월 말, 마지막 1학기가 남은 동생이 ‘유학을 가겠다’라고 선언했다. 미시적인 이유는 모르겠지만 표면적으로는 ‘취업에 대한 불안함’과 ‘해외 유학 경험을 쌓은 친오빠인 나에 대한 동경’ 때문이었다. 부모님은 동생의 유학 각오를 찬성하며 전폭적으로 지원하기로 했고, 동생은 나름대로 자기가 공부하러 갈 국가를 선택하기 시작했다.

 국가를 선택하기 위해서 동생은 나에게 ‘정보를 어디서 찾는지’라며 물어봤다. 일반적으로 유학을 간다고 하면 오스트레일리아나 캐나다, 미국 등으로의 연수, 아니면 베트남이나 필리핀 정도를 생각하고 웹 검색을 통해 많은 정보를 취득하지만 우리 가족은 영어권 국가로 유학 보낼 정도로 사정이 좋지만은 않았고 무역을 공부하는 동생의 전공 특성상 영어 이외의 언어가 필요하다고 생각되어 아시아 이외에서 공부할 지역을 찾게 했다. 그런 힘든 전제조건 속에서도 동생은 열심히 알아보더니 벨라루스로 정했다고 가족에게 말했다. 그리고 동생은 혼자서 현지 대학에서 어떻게 공부할 수 있는지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어느 날 동생은 나에게 연락해서 ‘벨라루스 민스크에 있는 대학에 원서를 넣었다’라고 말했다. 같은 구소련국가인 우크라이나에서 공부했던 나는 ‘E-메일로 원서를 넣었다’라는 황당한 소리를 들으며 당황했지만 대학에 연락해 확인해보니 동생이 원서접수를 했다는 것이 사실이었고 나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스스로 자신이 공부할 국가를 정하고, 정보를 수집하고 하는 모습이 기특하게 여겨졌다.

 하지만 원서를 보낸 지 몇 주가 지나도 입학을 승인하는 ‘초청장’이 오지 않았고, 동생과 부모님은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구소련국가들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초청장 서류가 필요하고, 동생은 유학에 올인하면서 대학에 휴학계를 제출했는데 초청장 서류가 현지 대학 입학 기간인 10월 1일이 다가오는데도 도착하지 않아서 더욱 그러셨다. 집안에서는 같은 구소련국가에서 유학했던 내가 직접 개입하기를 원했고, 나 역시도 동생이 잘못되는 것은 바라지 않아 짧은 언어를 토대로 현지 대학과 이메일을 통해 연락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웬걸, 동생이 영어로 편지 보낼 때는 며칠 뒤 답장을 보내주던 현지 대학 측에서 러시아어로 편지를 보내니 상당히 빠른 속도로 답변이 오기 시작했다.

 이때부터였을까, 상황은 약간 이상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당사자인 동생이 현지 대학과 이야기를 하면서 조율해야 할 일들을 중간에서 내가 하고 있었다. 물론 편지를 주고받는 기간의 텀이 러시아어로 작성해야 짧기도 하고, 나 자신부터 ‘동생이 공부하러 가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고는 해도 당연하다는 듯이 여기고 동생이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 것 같아서 화가 났닫. 결과적으로 나는 동생의 초청장을 챙겨 받기 위해 2주가량 단독으로 현지 대학과 연락을 주고 받았고 지난 26일 초청장을 받아냈다.

 초청장을 받았다고 동생에게 알려줬더니 ‘당사자인 자신에게 오지 않고 오빠를 통해서 전달받았다’는 사실에 화가 났는지 학교에 항의 서신을 보냈다. 그리고 동생은 신속하게 일처리를 진행해 오는 30일 비자를 수령해 다음 날인 10월 1일 저녁에 출국하게 됐다. 유학을 준비하면서 필요한 서류들에 대해 미리 알아보았고 완비해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다만, 이 과정에서부터 문제가 한 가지 생겼다. “동생은 러시아어를 전혀 모르고 내 경험은 구소련 국가들의 행정은 부딪히지 전까지는 알 방도가 없다”라고 계속 말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하나뿐인 동생을 위해 오빠인 내가 같이 벨라루스로 출국’해주기를 원했다. 아무래도 인접 국가이면서 같은 구소련 국가인 우크라이나에서 같은 과정을 겪어봤고, 조금이라도 의사소통이 가능하니 내가 가면 조금은 수월해지지 않을까 하는 믿음이었다. 문제는 나는 내가 동생을 해외까지 쫓아가서 도와준다는 계산을 한 적이 없어서 대학에서 듣는 수업을 빼지 않고서는 가지 못하는 상황이었고, 내가 같이 간다고 하더라도 동생이 혼자 갔을 때 직면할 상황과 같이 갔을 때 직면하는 상황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문득, 내가 우크라이나에 입국했을 때가 생각이 났다. 아무도 영어를 모르고, 소통이 되지 않아 바로 기숙사에 입사하지 못하고 며칠이 지난 뒤에 겨우 기숙사에 들어갔던 경험을 생각하니 불안했다. 기숙사에 입사하겠다고 이전부터 말해왔지만 현지 행정 처리가 한국처럼 말끔하지 않기 때문에 심각한 경우 동생이 영어도 모르는 나라에서 방을 구하는 심각한 상황에 처할 수 있으니 말이다. 당시 나는 우연히 같은 기숙사 건물에 거주하는 한국인 2분을 1층에서 만났고, 이 2분 덕에 무사히 기숙사에 입사할 수 있었던 기적 같은 일이 있어서 해결됐었던 생각이 났다.

 결국 모든 각오와 책임이 나에게 다가오는 시점이 왔다. 만일 내 출국이 정해진다면 바로 교수님들께 전체적으로 연락을 남겨서 수업을 참여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양해를 구해야 하고, 서둘러 보험과 숙소를 구매해야 한다. 이 과정 속에서 나는 계속 수업 참석에 대한 고민을 한다.

 모든 고민이 마무리됐을 때 나는 가장 옳은 판단을 한 상태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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