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뒤에 서는 여자, 조난실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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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뒤에 서는 여자, 조난실의 등장
  • 김이곤
  • 승인 2019.10.29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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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모던 보이'를 보고
▲김이곤 기자
▲김이곤 기자

[미디어라인=김이곤기자] 이해명이 근대적인 양복을 입는 남자라면, 조난실은 노래를 부르는 여자이다. 또, 이해명이 거울 앞에 서는 남자라면, 조난실은 무대 뒤에 서는 여자이다. 나는 영화를 보며 그녀가 무대 뒤의 여자라는 것은 이중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다.

당시 독립운동가이자 여자로서. 그녀는 테러박이라는 가상의 인물을 스스로 만들고 그 뒤에 서 있는다. 대부분이 남성인 이들 옆에서 여성에게 부여된 역할이란 조력자이거나 기다리는 자에 불과한 것이다. 따라서 조난실이 너무 많은 이름과 직업 사이에서 자신을 숨길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리라 생각된다. 하지만, 그녀는 실제로 무대에서도 결코 앞에 서지 않고, 뒤에서 조용히 노래를 부른다.

이 장면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장면은 도망간 조난실을 찾아 헤매던 이해명이 일본 가수의 콘서트장에서 무대 뒤의 그림자를 보는 장면일 것이다. 조선어가 아닌 일본어로 노래 부르기를 거부한 조난실은 얼굴 없는 가수가 되고, 그녀의 목소리는 이시다 료코의 입을 통해 흘러나온다. 이 장면은 마지막 이해명의 승강이로 조난실의 노래가 끊기고, 열심히 공연중이던 일본 가수가 ‘목소리’를 잃어버리는 장면과 대응한다.

이 장면이 흥미로운 이유는 여기에서 이 영화의 미덕인 ‘정치적 올바름’이 식민지 공간의 재현을 넘어서 그 속으로 개입해 들어가고자 하기 순간이기 때문이다. 이 장면이 불러일으키는 코믹함은 갑자기 텅 비어버린 목소리를 채우지 못하는 식민자의 당황에서 비롯된다.

이 개입은 조난실이 부르는 노래의 선곡에서 분명해진다. 광주 드림 신문에 따르면, 1970년대의 한국 노래인 ‘개여울’을 일본어로 번역해서 1973년의 일본 노래인 척 부르다가 한국어 원문으로 돌아오는 이 일련의 과정을 그렇게 의도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했다. 의도적으로 시간을 뒤섞음으로써 1937년의 시간을 해석하고자 하는 것일 수 있다.

그런 그녀가 노래를 멈추고 폭탄 연미복을 입고 무대 앞으로 나선다. 여성이라는 ‘젠더’와 ‘피식민’의 위치 속에서 늘 뒤에 있던 그녀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의 전면적 등장이다.

그녀는 그렇게 사라질 터이지만, 무대 뒤의 여성이 한 번 앞의 영역으로 발을 들인 것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순간이 된다. 그동안 독립운동사에서 조연으로 치부되어 온 여성 독립운동가 발굴이 활발해진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올해 국가로부터 인정받은 여성 독립유공자는 432명이라 한다. 이는 전체 독립유공자 1만 5천 511명의 2.7%에 불과하다. 지난해 교육부의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중·고등학교 검정 역사 교과서에 실린 여성독립운동가는 11명뿐이다.

근현대사 인물까지 합쳐도 여성은 16명에 불과하다. 남성은 독립운동가 및 근현대사 인물 총 192명이 1천355회 언급된 데 반해 여성은 38회 언급되는 데 그쳤다. 중학교 역사교과서 중에는 여성독립운동가가 아예 한명도 수록되지 않은 것도 있었다. 이처럼 교과서만 봐도 여성 독립운동가를 알리는 작업이 부족함을 알 수 있다. 우리는 늘 뒤에 있던 조난실을 떠올리며, 앞장서서 독립운동을 한 여성뿐 아니라 다양한 방법으로 독립운동을 뒷받침한 여성의 공적도 인정해주는 등 인식전환이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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