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칼럼] 제주 4.3사건의 올바른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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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칼럼] 제주 4.3사건의 올바른 이해
  • 이건우
  • 승인 2019.04.11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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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우 기자
▲이건우 기자

[미디어라인=이건우 기자] 영국의 역사학자 E.H 카는 역사란 '과거와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말했다. 역사적 사실은 사실 그대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 역사를 쓰는 역사가의 정신적 주관적 산물이다. 과거의 사실이 어떠했는가 보다는 역사지식을 생산하는 역사가가 현재 사실과 현실에 대해서 어떤 문제의식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카이사르가 루비콘 강을 건넌 것이 역사로 남듯 역사적 사실은 끊임없이 현재의 역사가와 상호작용한다. 제주 4.3사건의 평가 역시 사회적으로 합의가 되지 않는 것은 앞서말한 역사가와 마찬가지로 사람들마다 나름의 가치관과 이해관계를 가지고 그것을 평가하고 판단하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이것은 역사가 정립되는 과정이며 절대적인 역사는 없다는 전제에서 부터 시작해야 한다.

제주 4.3사건의 관해 대립되는 논점은 "국가권력에 의한 무고한 민간인의 학살" 또는 "남조선노동당의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반대 폭동" 두가지로 압축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두가지 모두 사실이다. 제주 4.3사건은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하여 1948년 4월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을 말한다.(개정 2007.01.24)

일본의 패망이후에 제주도는 해방으로 인한 기대감은 무너지고 미군정의 무능함에 대한 불만이 서서히 확산되는 분위기에서 남조선노동당이 이를 이용하여 1948년 4월3일 무장폭동을 일으킨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또한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무고한 제주도민(당시 인구 약 28만) 중 사망자만 약 11,000~14,000명, 부상자 등을 합치면 전체인구의 10%가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 또한 사실이다. 결국 이 사건에 대한 판단이 합의에 이르지 못하는 이유는 이것을 이데올로기적인 시각하에 남로당의 폭동으로 규정할것이냐, 인도주의적관점에서 폭동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피해를 입은 수많은 제주도민들에 초점을 맞추느냐의 따라 달리 평가되는 것은 불가피한 역사정립의 과정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주 4.3사건을 단순히 남로당의 폭동으로 규정해 버리기에는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이후 제주도민의 상황, 이후 정신적 피해규모에 비추어 보았을 때 적절치 못하다. 제주 4.3사건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1948년 4월3일의 남로당폭동 사건과 그 과정에서 국가권력에 의한 제주도민의 학살을 분리해서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절대적 역사사실에 대한 실체적 진실을 파헤치는 것이 아니라 고정된 역사를 보는 우리들의 시각에 차이가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며, 실증적이고 객관적인 역사적사실과 가치판단이 담긴 주관적 평가가 뒤섞인 편향적인 이념에 매몰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다. 이것이 4월3일이 4.3기념일이 아니라 4.3 "희생자 추념일"인 이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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