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칼럼] 그날, 바다는 비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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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칼럼] 그날, 바다는 비어있었다
  • 양인성
  • 승인 2019.04.1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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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세력 중국어선 특별합동단속에 총동원
양인성 기자
▲양인성 기자

[미디어라인=양인성 기자] "100톤은 연안 경비정 아닙니까. 구조정이 아닙니다. 13명 가지고 뭘 어떻게 합니까. 경찰관 10명, 의경 3명이었습니다" 김경일 123정장은 2014년 7월 28일 광주지방검찰청 조사에서 해경 지휘부에 억울함을 토로했다.

지난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55분 제주 해상교통관제센터(VTS)에 “배가 넘어간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독거도 남동쪽 2.4km 지점에서 경비 중이던 123정은 긴급 출동 지시를 받고 맹골수도로 향했다.

사고해역과 거리는 22km이었다. 원래 그 수역을 경비해야하는 함정은 전날 중국어선 특별합동단속 계획에 따라 먼 바다로 빠져있었다. 100톤짜리 소형함정 하나가 연안과 내해 전부를 경비해야하는 상황이었다. 혼자 도착한 123정은 현장지휘함(OSC·On-Scene Commander)으로 지정되었고 정장이 모든 책임을 뒤집어썼다.

세월호 사고가 터지기 이틀 전, 서해지방해양경찰청으로부터 중국어선 특별합동단속 계획이 하달된다. 출동함정을 무리하게 총가용하며 1차적으로 경비공백이 발생했고 소속 경찰서장들을 모두 현장지휘에 동원하면서 2차적으로는 지휘공백이 발생했다.

모 해경 관계자는 '중국어선은 이미 알고 다 도망갔는데 욕심 때문에 무리해서 밤을 지새우다 사고가 발생했다’며 ‘경비세력을 원래 구역으로 돌려보냈어야한다'고 강하게 지적했다. 전날 보령해양경찰서는 이러한 내해 공백 상태를 우려해 출동 함정 3척(P-89, P-90, 방제3호)에 별도 지시를 내려놓았다. 반면, 목포 해경전용부두에는 당직함이던 513함을 비롯해 9척의 함정이 있었으나 단 한 척도 경비 업무에 동원되지 않았다. 실제 바다에 떠있던 건 원 출동함정인 123정뿐이었다.

 세월호 사고 당일 서해지방해양경찰청 경비 배치도 정보공개청구목포해양경찰서
▲ 세월호 사고 당일 서해지방해양경찰청 경비 배치도 (정보공개청구=목포해양경찰서)

공백 상태였던 건 함정뿐만이 아니었다. 구조본부 핵심 지휘라인도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당시 검찰은 해경 지휘부의 책임 소재를 명확하게 밝히지 못했다며 이들을 기소 대상에서 제외했다. 아래는 당시 문자대화방 내용이다.

본청상황실님의 대화(오전 9:34): 서해청장 현장 지휘 바람
본청상황실님의 대화(오전 9:37): 목포서장도 현장 복귀 지휘할 것

당초 목포해양경찰서 김문홍 서장은 오전 9시에 이미 3009함에 착함했고 3분경 보고를 받았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기자가 서해청과 목포서에 정보공개 청구한 전보자료에 따르면 김 서장은 최초 보고가 이루어지던 시점 헬기에 탑승 중이었다. 당일 김 서장은 목포 광역구역 2개 편대를 맡아 현장점검 차 바다에 있었다. 오전 6시 1508함에 편승해 목포 광역 2구역으로 향했고 '1구역 지휘차' 9시쯤 헬기를 타고 3009함으로 이동했다.

그전에 세월호 사고를 인지하지 못 했고 일정을 바꿨다고 볼 만한 다른 근거가 없다. 따라서 전보에 기재된 시간보다 일찍 출발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렇다면 김 서장은 왜 시간을 앞당겨 진술했는가. 주파수공용무선통신(TRS) 녹취록을 살펴보면 김 서장은 사실상 세월호 좌현 완전 침수 상태였던 오전 9시 47분에 처음 등장한다. 김 서장이 교신 이전에 했다고 주장한 초동조치는 단 하나다.

'9시14분께 3009함 조타실에서 구내전화로 목포 상황실에 연락했다. 123정이 도착하면 여객선에 직접 승선해 구명벌을 투하하고 선장을 지휘해 여객선 선내방송으로 퇴선 명령을 하도록 지시했다. 또한 목포 122구조대를 현장에 즉시 투입하고 123정장은 대공마이크를 이용해 즉시 퇴선 방송하도록 했다' - 2014년 5월 30일 감사원 문답서.

그러나 김 서장이 주장한 초동조치는 거짓일 가능성이 높다. 김 서장의 진술은 항공구조사의 증언과 배치된다. 김 서장을 태웠던 B-512호기는 17분 3009함을 떠나 사고해역으로 출동했다. 9시 14분에 이미 심각성을 인지하고 퇴선 지시를 했다면 이후 현장 출동한 헬기에는 왜 그 정보를 전달하지 않았는가. B-512호기에 탑승 중이던 권 경사의 법정 증언에 따르면 권씨는 선내 상황에 대한 정보를 듣지 못 했다. 수백 명의 승객이 갇혀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진입을 시도했을 거란 얘기다.

비슷한 맥락에서 김 서장이 123정장에게 ‘퇴선방송을 했다’는 거짓 기자회견을 지시한 사실은 앞서 청문회를 통해 드러난 바 있다. 따라서 기자는 김 서장을 태운 B-512호기가 17분경 3009함에 착함한 후에 소식을 접했고 김 서장을 내려준 뒤 바로 사고해역으로 출발했다고 본다. 그냥 지휘가 아닌 ‘복귀’ 지휘하라고 한 것에 주목해보자. 함내 조타실은 청이나 서의 상황실 같은 중추역할을 한다. 최소 37분까지 김 서장은 이 조타실에 없었다. 초동조치가 거짓이라면 2~30분 정도 김 서장의 행적에 공백이 생긴다.

서해지방해양경찰청 이평현 안전총괄부장의 행적도 모호하다. 중국어선 특별합동단속 현장점검 중이던 이 경무관은 전날부터 3009함에 탑승 중이었다. 원래 김 서장이 타고 온 B-512호기의 연료 공급이 끝나면 서해청으로 복귀하도록 예정되어 있었는데 사고가 나며 헬기를 타지 못 했다. 해상 현장 내에서 계급 상 수장급인 이 경무관의 이후 행적은 확인되지 않았다. 서해청 상황실 임장 명단에서도 제외됐다.

 2015년 5월 20일 밤 광화문 광장에서 유가족들이 세월호 1주기를 맞아  나비 모양의 막대를 들고 행진하고 있다 사진양인성 기자
▲ 2015년 5월 20일 밤 광화문 광장에서 유가족들이 세월호 1주기를 맞아 나비 모양의 막대를 들고 행진하고 있다. (사진=양인성 기자)

‘곧 침몰한다’는 보고를 단 20분 남겨둔 오전 9시 28분, 김석균 해양경찰청장이 상황실에 임장했다. 8분 뒤 여인태 경비과장은 세월호와 전화 통화를 한 후 승객들이 나오지 못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이를 곧바로 이춘재 경비안전국장에게 알렸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이 국장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고 골든타임을 훌쩍 넘긴 10시 47분이 되어서야 서해청 상황담당관에게 전화해 승객이 전부 밖으로 나왔는지 확인한다. 10시 50분경 김 청장이 현장지휘를 위해 영종기지에서 헬기를 타고 출발했지만 세월호는 이미 물에 잠긴 뒤였다. 현장점검 헬기요청 공문을 살펴보면 낯익은 이름이 등장한다. 바로 이춘재 경비안전국장이다. 당일 이 국장은 중국어선 특별합동단속 현장점검을 위해 3009함을 방문하기로 했었다. 여 과장으로부터 제때 보고를 받은 게 맞는지 조사가 요구된다.

책임의 칼날은 뭉툭했고 제대로 된 대상을 베지 못한 채 아래로 고꾸라졌다. 윗선의 무리한 운용에 구조실패라는 결과가 예정되어 있지는 않았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해양안전심판원에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세월호 참사 이후 지난 5년간 해양사고 발생건수는 오히려 계속해서 증가했다. 2014년 발생건수 1330건에서 2018년 발생건수 2671건으로 2배 이상 늘었다. 부담도 책임도 늘었다. 제 2의 세월호 참사를 방지할 수 있는가. 경비공백은 변명할 여지없는 국가의 잘못이다. 두 번 다시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를 통제하는 제도적 확충과 책임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이 선행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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