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 눈] 민주주의는 아직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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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 눈] 민주주의는 아직 오지 않았다.
  • 전영민
  • 승인 2020.01.28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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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민 기자
▲전영민 기자

[미디어라인=전영민 기자] 1987년. 아직 내가 태어나지도 않은 해이지만, 역사책 혹은 선배의 이야기를 통해 6월 항쟁의 생생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1987년 이후 33년이 지난 2020년의 모습은 어떻게 기억이 될까? 2019년을 돌이켜보면 ‘이념갈등’, ‘세대갈등’, ‘젠더갈등’ 등 수 많은 갈등이 발생되고 있지만 정작 갈등이 해결되는 모습은 전혀 없다. 갈등을 정치의 영역으로 가져와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현 시대의 정당과 정치를 보면, 민주화는 우리가 성취하였지만 민주주의의 발전과는 점점 더 멀어지고 있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민주화를 성취한 지 33년이나 지났지만 우리는 왜 민주주의의 발전을 기대하지 못하는 것일까?

 최근 386세대에 대한 비판적인 여론이 강하다. 민주화를 성취한 세대이지만 되려 민주주의를 퇴보한다는 의견이 많다. 진보진영의 대표 학자인 최장집 교수 역시 386세대에 대해 비판을 아끼지 않는 상황이다. 386세대에 대한 비판을 의식한 정당은 21대 총선에서 청년들의 영역을 키우고, 앞다투어 청년 인재영입을 각 정당에서 발표하고 있다. 청년들이 정치권에서 영역을 넓히는 것은 매우 긍정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시스템과 패러다임의 변화 없이 몇 사람만의 교체로는 민주주의의 발전을 도모할 수 없다. 386세대가 차지하고 있는 영역을 현 2030세대로 교체되는 것만으로는 민주주의의 발전을 도모할 수 없다. 현재 정치·경제 등에 형성되어있는 386세대 카르텔을 깨부수지 않는 이상, 카르텔을 유지하는 사람 혹은 세대만 변화할 뿐 카르텔 자체는 계속 공고해질 것이다.

 국회는 국민을 대의(代議)하는 기관이라는 것은 상식이다. 국회가 국민을 대의(代議)하기 위해서는 국회 구성의 비례성이 뒷받침되야 한다. 하지만 민주화 이후 국회에 386세대의 카르텔 혹은 엘리트 카르텔이 자리잡고 있어 국회가 국민의 비례성을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국회가 국민을 대의(代議)하지 못하다보니 국민들은 정치적 효능감과 국회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고, 신뢰가 떨어지는 국회는 점점 국민을 대의(代議)하지 못하는 기관으로 자리 잡게 되는 악순환에 빠져들었다.

 이러한 악순환을 해결하기 위한 열쇠는 바로 국민과의 공감성에 있다. 현재 정치권에 자리잡은 카르텔을 깨고 일반 국민과 다를바 없는 ‘보통 사람’이 국회에서 국민들을 대의(代議)하여야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시스템과 패러다임으로는 절대 ‘보통 사람’이 진입할 수 없다. 선거를 치르기 위한 막대한 비용과 공청과정의 불투명성은 ‘보통 사람’과 정치의 거리를 계속 멀어지게 만들고 있다. ‘보통 사람’이 국회에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비례대표제가 운용이 되고 있지만, 선거제도가 개편되면서 되려 국회로 들어가는 문만 더 좁혀지는 결과만 초래하였다.

 세대교체로 정치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지만 어디까지나 한계가 있다. 나이 많은 운전자가 모는 낡은 자동차에 젊고 새로운 운전자로 교체한다고 바뀌는 것은 크게 없다. 지금까지 정치권은 국민에게 사랑받을 인재 혹은 역량 있는 청년들을 운전석에 앉혀놓고 운전대를 잡지 못하게 하였다. 새로운 운전자가 운전대를 잡고, 낡은 자동차를 수리하기 위해 스페어를 쥐어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운전자가 계속 유입이 될 것이고, 정치 카르텔은 점점 갈 길을 잃을 것이다. 이 때 ‘성숙한 민주주의’는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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