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칼럼] 분노의 시대와 김수영의 적(敵)
상태바
[청년칼럼] 분노의 시대와 김수영의 적(敵)
  • 변승주
  • 승인 2019.05.10 18: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변승주 기자
▲변승주 기자

[미디어라인=변승주 기자]뉴스에 분노가 넘쳐난다. 분노하지 않고서는 볼 수 없는 사건들이 하루가 멀다고 발생한다. 국회에서는 입법과 재정이 아닌 멱살 잡기와 폭언이 오가고, 국민을 위한다는 국회의원은 뇌물 수수와 성 접대 의혹으로 검찰에 출석했다. 분노할 '적(敵)'이 세상에 많아도 너무 많다. 시인 김수영이 살던 시대도 그랬다. 사방에 적이 있었다.

김수영은 6·25전쟁이 발발해 인민군이 퇴각할 때 의용군으로 징집되어 이북으로 끌려간 뒤 고생 끝에 서울로 돌아가지만, 경찰에 체포되어 포로수용소로 보내진다. 겨우 포로수용소에서 나온 후 그는 방황한다. 그 때문일까, 김수영의 시에는 적이 자주 등장한다. 시 <적>, <적1>, <적2>에 이어 <하…… 그림자가 없다>에도 '적'이라는 시어가 등장하고, 시 <도적>도 있다. 그에게 적은 도대체 누구였을까.

시 <적1>에서 김수영은 누구나 무슨 적이든 적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적 없는 사람은 없다. 적은 우리를 계속 생각하게 만든다. 나와 적에 대해서 무엇인가 계속 의심하고 고민하게 만든다. 데카르트의 철학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와 관련지어 생각하면 적은 우리를 생각하고, 결국 존재하게 만든다. 그 적은 가벼운 적도 무거운 적도 없다. 오늘 맞이하는 적이 가장 무섭고 무거운 듯하지만, 내일은 또 다른 적이 온다. 시인에게 적은 자신을 생각하게 만드는, 의심하게 만드는 존재다.

그러나 시인은 "가끔 오늘의 적도 내일의 적처럼 생각"(김수영 '적1')한다. 이제는 '적'이 '내부의 적'이 된다. 밖에 있는 적은 무찌를 수 있다. 하지만 내부의 적은 싸워 이겨냈다 싶으면 다시 생겨나고, 무시하면 마음 편해지는 존재다. 오늘의 적으로 내일의 적을 쫓으면 되고 내일의 적으로 오늘의 적을 쫓을 수 있어 무사태평하다.

나는 분노한다. 그러나 분노할 일이 너무 많은 세상에 체념하기도 한다. 외부의 적, 내부의 적 모두 무시하고 태평으로 지내고 싶다. 오늘 해야 할 일을 내일로 넘기고, 신문의 사회·정치면을 내일로 넘기고, 어렵고 복잡한 고민도 내일로 미룬다. 그렇기에 내 하루하루는 태평하다. 동시에 내 마음 한 구석은 태평하고 싶지 않다. 오늘의 적을 오늘 이겨내고, 내일의 적을 내일 이겨내고 싶다. 

그럴 때 김수영을 생각한다. 위대한 시인으로 일컬어지나 어머니에게 ‘이 지경에서도 식구들을 몰라라 할 수 있느냐’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어려운 집안 사정을 방관했으며, 그가 먹고 살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 덕분이었음에도 어머니에게 욕을 하고 행패를 부렸고, 친구 덕분에 취직한 이후에도 방 안의 기물들을 집어 던지고 고래고래 소리쳤던 김수영을. 그러면서도 "바르게 살고 있다고 생각한 내 내면에는 사실 얼마나 많은 도적이 살고 있는가."(김수영 ‘도적’)라고 시를 쓰며 외면하고 싶은 본인의 모습을 마주한 김수영을.

그리고 태평하게 살고 싶어 하는 내 모습을 바라본다. 김수영이 자기 자신을 냉철하게 바라봤다면 내가 못 그럴 이유가 없다. 김수영이 그랬듯 내부의 적을 마주하련다. 그리고 태평이 아닌 의심으로 외부의 적을 마주하겠다. 분노의 시대에 분노하다 못해 체념했는가? 분노가 아닌 냉철함으로 그들과 나를 바라볼 때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