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칼럼] <백수일기 #1> – 오늘도 출근길에 퇴사를 꿈꾸는 이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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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칼럼] <백수일기 #1> – 오늘도 출근길에 퇴사를 꿈꾸는 이들에게
  • 한성규
  • 승인 2019.01.17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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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규 기자
▲한성규 기자

[미디어라인=한성규 기자] 세상이 바뀌었다. 취업대란에 지방직 공무원 경쟁률이 백대일이 넘고, 편의점 야간아르바이트까지 면접을 보고 들어가게 되었다. 대통령이 일자리 상황판까지 걸어놓고 집중적으로 챙긴다고 한다. 나랑은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아차하는 사이에 나도 그만 백수가 되고 말았다.

나도 내가 이 꼴이 날 줄은 몰랐고 특히나 아들 자랑을 취미로 삼으시던 우리 부모님의 놀라움은 더 컸다. 너희 아들, 그 뭐시다냐. 외국에서 공무원 한다며? 근데 왜 여기 있냐? 어제 후줄근한 추리닝 입고 동네 돌아다니던데? 라는 소리가 듣기 싫어 요즘 우리 부모님, 두문불출하신다.

82년생 남자의 비극

82년생 남자인 나는 지금까지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산업도시인 울산에서 태어나 미세먼지와 공해를 친구삼아 놀았다. 밖에서 놀다가 기침이 터져 나와도, 집에 들어오면 옷이 시커멓게 변해도 너무 열심히 논 내 탓인 줄 알았다. 엄마가 내 탓이라고 했으니까. 고등학교 때 IMF 사태가 터졌다. 금을 내놓아야 나라가, 경제가 산다고 했다. 해외여행이나 다니고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린 국민이 원흉이라고 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탓했다. 신문이고 방송이고 다 국민 탓이라고 했으니까. 나는 여권도 없었고 멀리 떠나본 곳이라고는 버스 타고 수학여행 가본 게 전부였다. 샴페인은 폭죽 같은 건 줄 알았다.

"엄마 우리는 금 좀 없어요? 나도 나라에 금 좀 갖다주게 주세요." 했더니 "? 금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다음 달 생활비가 나올지 안 나올지도 모르는데!"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줄줄이 서서 금을 내놓는 어린이들을 보며 나는 우울해졌다. 금 없는 나 같은 청소년 때문에 곧 나라가 망할 것만 같았다. IMF가 터지자 정치인들, 기업인들, 신문 기자들은 IMF를 욕한 후, 흥청망청 놀아난 국민을 탓했다. 나를 포함한 모두는 IMF도 경제도 잘 이해 못 했기 때문에 다 우리 탓인 줄 알았다. 그런데 살면서 여러 가지 인간들을 만나다 보니 깨닫게 된 게 하나 있었다. 뒤가 켕기는 녀석들은 항상 앞장서서 남들부터 비난한다는 사실을.

대학교에 가서는 입학하자마자 영어 단어 책을 씹어먹을 기세로 공부했으며 신문사 인턴도 시작했다. 술을 밥처럼 먹으며 기사를 썼으며 틈틈이 술의 힘을 빌려 학교공부도 하고 미리미리 취업준비도 했다. 취업준비를 하면 할수록 준비해야 할 건 더 많아졌다. 신문사 인턴으로는 부족해 공모전 준비까지 해야 했으며 영어 하나로는 부족해서 중국어, 일본어까지 공부했다. 그래도 취직이 될지 말지는 보장이 안 된다고 했고 나는 잠자는 시간에도 영어 라디오를 들으며 잤으며 밥을 먹을 때도 책을 읽었다. 대학교만 가면 잔디에 앉아서 기타치고 연애질한다는 건 다 거짓말이었다.

돈도 벌고 취업에 도움이 된다는 소리에 군대까지 시험을 치고 들어갔다. 1년 6개월로 단축된다고 남들이 신나있을 때 나는 장장 3년 6개월을 군대에서 일했다. 다시 하라고 하면? 절대로 못 한다. 군대에서 주경야독이라는 말을 철떡 같이 믿고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를 했는데, 1년에 한 번 있는 외무고시시험만 보면 떨어졌다.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도 잘 안 되는 나라는 대한민국뿐이라는 생각에 외국 공무원 시험을 봤는데 신기하게도 척척 다 붙었다. 한국은 경쟁이 너무 심해서 필리핀인이나 중국인에게는 수험기회조차도 주지 않지만, 외국은 그렇게 매정하지는 않았다. 나는 양이 4천만, 사람은 4백만밖에 안 된다는 뉴질랜드라면 경쟁 좀 안 하고 살 것 같아 그곳을 선택했다. 영어도 잘 모르고 세금은 더더욱 몰랐지만 뉴질랜드 국세청에 입부하자마자 세무교육 담당을 맡았고, 살아남기 위해서 4시간짜리 프레젠테이션을 대본까지 달달 외우며 사장님들 세무교육을 시켰다. 그렇게 정신없이 살아오다 정신을 차려보니 내 나이는 벌써 35살이었다.

그 해는 이상했다. 직장 건물의 16층에서 한 사람이 자살을 했으며 직장 동료 중 하나가 과로로 자기 책상에서 숨을 거두었다. 사람의 평균연령은 70세 정도 된다는 신문기사가 내 눈앞에 있었다. 그때 갑자기 든 생각은 인생의 반은 남들이 시키는 것만 했으니 나머지 반은 내가 하고 싶은 것 좀 하고 살아도 되지 않나 하는 것이었다. 네가 떠나면 일주일에 세 번이나 있는 세무교육은 누가 하고 네가 관리하던 회계법인 52개는 또 누가 챙기냐며 팀장은 나를 잡았다. 나는 그날 그만두지 못하면 죽을 때까지 남들이 시키는 것만 하고 살 것 같았다. 떠나는 날, 인수인계를 시켜줬음에도 후배는 궁금한 것이 생기면 물어도 되냐고 했다. 나는 저 멀리 다른 나라로 떠날 거라고 멋있게 거절했다. 후배는 끈질겼다. 이메일로라도 물으면 안 되냐고 했다. 인터넷으로 연결된 글로벌 사회라며. 나는 “죽는다.”라고 대답해주었다.

누가 백수가 제일 바쁘다고 했나? 몰랐는데 정말 맞다. 이제는 2주일마다 통장에 찍히던 월급도, 어디 가서 나를 소개할 명함도 아무것도 없다. 그동안 모아놓았던 돈으로 중국의 미래에 투자했는데 이 망할 나라가 미국이랑 티격태격하더니 내 중국펀드도 1년 새 반 토막이 나버렸다. 내 돈은 빼도 박도 못하게 되었고 나는 살아남기 위해 이것저것 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한국 정부는 일자리 정부라고 자랑하고 있었고 창의적인 인재를 지원한다고 했다. 나는 귀국을 서둘렀고 일자리지원사업에서부터 예술인 지원사업, 창업지원사업, 등등 여러 가지 일들을 벌이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한국에서 백수로 살아남으려고 발버둥 치고 있는 82년생 한국남자의 생존기를 써 내려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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